유성구 문화재1 소개
안녕하세요.
유성호빠입니다.
오늘 유성호빠와 함께 유성구의 송준길 행초 서증손병하, 이시방 초상, 통영 측우대, 성수침 필적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유성구 문화재1
송준길 행초 서증손병하

- 지정번호보물
- 소재지: 대전 유성구 도안대로 398
- 지정일: 2010-10-25
상세소개
“송준길 행초 서증손병하”은 조선중기의 학자ㆍ문신ㆍ명필인 동춘당 송준길이 송(宋)나라 양시(楊時)의 칠언절구
「저궁관매기강후(渚宮觀梅寄康侯)」를 장지(壯紙) 네 장을 이어 붙여 대자 행초로 쓴 것이다. 말미에 “숭정기유청화춘
옹서증손병하(崇禎己酉淸和春翁書贈孫炳夏)”라 하여 1669년 사월에 64세의 할아버지가 손자 송병하(字子華)를 위해
써주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서축(書軸)은 동춘당 송준길(1606-72)이 남긴 여러 필적 가운데 규모가 제일 큰 대폭으로 손자 송병하라는 수증자와
1669년이란 필사연대를 완벽하게 갖춘 예이다. 또 종택에 전해오던 필적으로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하다.
유성구 문화재1 이시방 초상

- 지정번호보물
- 소재지: 대전 유성구 도안대로 398
- 지정일: 2007-06-28
상세소개
李時昉(1594-1660)은 仁祖反正의 주역들인 延平府院君 李貴(1557-1633)의 次子이자 延陽府院君 李時白(1581-1660)의
동생이다.
이시방은 아버지와 형을 따라 1623년의 30세 때 仁祖反正에 참여하여 靖社功臣 2等으로 延城君에 봉해지고, 이후 여러
차례 判書를 지낸 뒤 顯宗 즉위년(1659) 가을에 判義禁府事를 지냈다.
현재 대전의 후손가에 전하는 이시방의 영정은 모두 6점인데, 본래는 이시방의 후손들이 世居하던 洪城의 祠堂에서 주로
봉안해오던 것들이라고 한다. 먼저 1623년의 仁祖反正에 참여하여 靖社功臣에 녹훈되던 30세 때의 젊은 모습을 그린 것이
3점인데, 이 중에서 官服本 全身像 1점은 17세기 초반의 전형적인 功臣圖像의 형식과 화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이시방의 靖社功臣像 원작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와 圖像이 같은 半身小像 1점은 훗날 延平府院君 李貴의 祠宇가 있는 公州 木洞面의 盛峰書社(盛峰書院)에 李時昉
像을 모시기 위해서 이 功臣像의 일부를 다소 거칠고 조악하게 摹寫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 1점의 油紙 草本은 이 胸像을
그릴 때 全身像에서 떠냈던 草本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 다른 한 종류의 영정 3점은 얼굴 모습이 거의 동일한 老年像인데,
2점은 종이에 그린 胸像 草本이고, 나머지 1본은 이 草本을 토대로 하여 비단에 그린 正本의 半身像이다. 이 중 17세기 공신
도상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관복본 전신상>에 대해서만 보물로 지정한다.
ㅇ 규격(세로x가로) : 169.0x93cm(화면), 224.0×106.3cm(전체)
– 관리자 : 대전역사박물관
통영 측우대

- 지정번호보물
- 소재지: 대전 유성구 대덕대로 481
- 지정일: 2010-04-23
상세소개
국립중앙과학관의 통영(統營) 측우대는 수군통제영이 통영에 있을 때 설치했던 것으로 측우대 앞면 중앙에 ‘측우대(測雨臺)’
라는 글자와 ‘신미 2월(辛未 二月)’이라고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어서 1811년(조선 순조 11년) 또는 1871년(조선 고종 8년)에
만든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명칭뿐만 아니라 제작 년대가 확실하게 명기되어 있는 역사적 가지가 높은 귀한 과학유물 중에 하나로 평가되었다.
둥근 받침돌 위에 사각 기둥형 측우대가 설치되어 있으며 받침돌에는 금이 가있으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측우대 혹은 측우기가 실물로 남아 있는 것은 5개(측우대 4, 측우기 1)뿐이며, 이 측우대는 그 가운데 하나이다.
또한 받침돌까지 남아있는 것은 이 측우대가 유일하다.
성수침 필적

- 지정번호보물
- 소재지: 대전 유성구 도안대로 398
- 지정일: 2010-01-04
상세소개
표지에 ‘청송서(聽松書)’라고 쓰여진 이 서첩은 16세기 학자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 1493~1564)이 당나라 가도(賈島),
두목(杜牧), 이상은(李商隱)과 송나라 구양수(歐陽脩)의 칠언시를 쓴 것이다. 종이 바탕을 줄[行]에 따라 잘라 첩장하였다.
송명흠(宋明欽, 1705~1768)후손의 기증품으로 송명흠의 아버지 송요좌(宋堯佐, 1678~1723)의 [청은당(淸隱堂)]이란
인영(印影)이 있다.
성수침은 이황과 함께 16세기를 대표하는 도학자 명필로 필적은 드문 편이다. 현재 그의 소자(小字)는 몇몇 전하고 있는
상황이고 대자(大字)는 목판밖에 전하지 않는다. 이처럼 큰 글자로 쓴 작품이 현존하는 것은 매우 드문 예이며 담묵(淡墨)을
즐겼던 그의 특징이 또한 잘 나타나 있다. 서예사적으로 매우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출처 유성구문화관광
유성구 문화재1 소개 끝